폐암 투병 ‘개그맨 김철민’ 부모 형제가 암으로 사망한 슬픈 가족사

1967년 1월 20일 충남 논산(충청 남도·논산)에서 태어난 명지 대학을 졸업했다. 본명은 김·쵸루승이다. 1989년부터 대학로에서 기타를 치며 거리 공연을 갖고”대학로의 남자”란 별명을 얻었다. 공연 수익금은 소년 소녀 가장을 돕기, 무의탁 노인 돕기 등에 사용하는 등 선행과 봉사 활동에 앞장 서서 왔다.그는 코메디언 김·김형곤의 “코미디 클럽”무대에 오른 연예 활동을 시작하며 1994년 MBC 제5기 공채 개그맨이 지원하고 합격했다. “칼 투”김·대균 정·챠느 등이 동기이다. 김·철민은 그의 특기인 노래와 개그를 조합한 어쿠스틱 기타 개그를 선 보이고 활동했다. 07년 MBC예능 프로그램”개그야 “에서 “노블 X원”에 출연하고 얼굴을 알리고 09년 영화”청담 보살”에서 중국 음식점의 종업원을 맡았다. 하지만 개그맨으로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 했다.

김철민의 친형이 나훈아의 성대모사 가수로 유명한 나훈아(본명 김갑순)다. 노훈아 역시 김형곤과 인연이 깊다. 어느 날 김철민은 자신의 친형인 김갑순을 김형곤에게 소개했다. “우리 형이 나훈아를 닮았는데 무대에 서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지만 김형곤의 반응은 냉랭했다. 잠시 후 김철민은 형을 김형곤에게 데려갔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바로 ‘너 훈’이라는 예명을 지어줬다. 이때부터 김갑순은 ‘생계형 모방 가수’로 활동하며 나훈아의 대리 인생을 살게 된다. 노훈아는 코미디 클럽에 노훈아라는 타이틀로 무대에 섰다. 이후 합창 가수로 성공가도를 달리며 전국 각지의 밤무대와 축제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여러 차례 방송에도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하지만 2012년 간암 3기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 2014년 1월 세상을 떠난다. 향년 57세. 그는 “무대에서 인생을 마감하겠다”며 투병 생활 중에도 자신을 찾는 곳 어디든 달려갈 정도로 마지막 무대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고인의 빈소에는 평소 친했던 모창 가수 밤실, 배탱이, 이은자, 태준아, 조현필 등이 조문했다. 뽀빠이 이상용과 개그맨 엄영수 등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안타깝게도 김·철민에는 “암”이라는 가족력이 있었다. 아버지는 폐 암으로 어머니는 간 암으로 죽고 형의 김·가프승 외에 다른 형제 한명도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김·철민은 각종 방송에 출연하고 이런 가족력을 밝혔다. 그는 가족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평소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건강 관리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김 철민도 암의 마수를 피할 수 없었다. 2019년 8월 7일, 요통으로 병원을 찾았다가”폐 암 4기”이란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암세포가 림프, 간, 뼈에 전이된 상태였다. 그토록 피하려 했고 우려했던 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그는 SNS를 통해서”오늘 아침 9시에 폐 암 말기 판정을 받은 “과 알린 뒤” 헤어져야 하고 슬픔의 눈물이 앞을 가리다. 하지만 먼저 헤어진 부모와 오빠에게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것 덜 슬플 “로서 ” 남은 시간 여력이 있으면 끝까지 기타를 감고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어”이라고 말했다.김·철민은 원자력 병원에 입원하고 어려운 암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투병 중에도 8월 24일에는 인천 문화 예술 회관에서 자선 콘서트” 힘내김·철민”를 열어 관객을 만났다.

김철민을 돕기 위해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 출신 가수 한여름, 김영택, 성국, 진달래, 신성, 정재원, 젠틀맨, 김혜나 등 동료 가수들이 함께 무대를 꾸몄다. 설운도, 진시몽, 박구윤 등도 초청 가수로 참여했다.가수들의 무대가 끝난 뒤에는 김철민이 직접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그는 공연 이틀 뒤인 8월 26일 힘없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 아침에 눈을 떠 문득 너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병문안 온 목사님이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신다’고 했다. 부탁한다. 여러분의 기도로 기적의 생명을 얻고 싶다”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철민은 온라인에서 개 구충제로 말기 암을 치료했다는 주장이 확산되자 ‘펜벤다졸’을 복용하겠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험을 해보자. 시간이 없어 마지막 희망을 품고 시도했다고 말했다.김철민은 펜벤다졸을 복용해 통증이 크게 줄었다고 주장했지만, 그로부터 10개월 후 부작용으로 복용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김·철민은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 복지 위원회 국정 감사에 화상으로 참여하고”후에은벵다조ー루, 선인장 가루 액체, 대나무 죽순 식초 등 수십 종류의 대체 요법을 제안된 “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른 사람이 좋아진다고 자신도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서 복용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며 암 환자 상담 전문 필요성을 주장했다.10월 13일 김·철민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95일 입원 중. 사랑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실었다. 사진 속 김·철민은 백발이 강한 채 마스크를 하고 누워서 있는 모습이다. 12월 10일에는 “덕분에 행복했다.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라고 남겼다. 그리고 6일 만인 1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54세. 그토록 인생에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결국 가족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짧은 삶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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